미국의 야심 찬 실험 '스톰퓨리 프로젝트'가 남긴 것들
허리케인을 약화시키거나 경로를 바꿔서 인명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이런 상상은 한때 미국 정부가 실제로 추진했던 과학적 도전이었습니다. '스톰퓨리(Stormfury)'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미국 해군과 기상청이 주도했던 기후 조절 실험이었습니다. 그 목표는 단순한 관측이 아닌, 허리케인을 '약하게 만들거나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 과감한 실험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과학계와 대중 사이에서 논란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시작은 '폭탄으로 허리케인을 막을 수 있을까?'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 기술에 대한 기대감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원자력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퍼졌고, 허리케인마저 조절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1946년 뉴욕타임즈는 핵폭탄으로 허리케인을 방향 전환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물론 이는 이후 수차례 "절대 하면 안 되는 일"로 결론 났지만요.
그보다 현실적인 접근은 '클라우드 시딩(Cloud Seeding)'이었습니다. 이는 냉각된 구름에 드라이아이스나 요오드화은을 뿌려 얼음결정을 만들어 비나 눈을 유도하는 기술이죠. 1947년, 이 기술을 이용해 처음으로 허리케인을 바꿔보려는 시도가 **프로젝트 시러스(Project Cirrus)**라는 이름으로 진행됐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인근을 지나던 허리케인에 드라이아이스 80kg을 뿌렸고, 이후 허리케인의 진로가 갑자기 꺾이며 조지아주 사바나를 강타해 사망자와 수백만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과학적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대중은 "구름을 건드렸다가 재앙이 왔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허리케인 조절 실험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낳았고, 이후로는 철저한 조건 아래에서만 실험이 가능하게 됩니다.
‘스톰퓨리’의 도전과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허리케인 조절 실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62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 스톰퓨리(Project Stormfury)**는 요오드화은을 이용해 허리케인의 눈(eye) 바깥쪽 구간을 시딩함으로써 '이중 눈벽(double eyewall)'을 형성시키고, 그 과정에서 허리케인의 중심 회전을 느리게 만들겠다는 이론에 근거했습니다.
이는 마치 스케이트 선수가 팔을 펼치면 회전 속도가 느려지는 원리와 같았죠.
1969년, 허리케인 데비(Debbie)는 스톰퓨리의 가장 주목할 만한 실험 대상으로 기록됩니다. 미 해군과 NOAA 소속 13대의 항공기가 나흘간 총 2,000개의 요오드화은 캡슐을 허리케인에 투하했고, 이 중 2일간은 허리케인 풍속이 각각 31%, 15% 감소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변화가 자연적 확률보다는 실험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으며, 그간 회의적이었던 시선이 기대감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드물었습니다. 이후 진행된 실험들, 예컨대 1971년 허리케인 진저(Ginger)에서는 거의 아무런 변화가 관측되지 않았고, 오히려 허리케인이 자연적으로 이중 눈벽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음이 밝혀지면서 실험의 과학적 근거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요오드화은을 뿌리는 항공기는 목표 구역을 정확히 조준하기 어려웠고, 많은 경우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허리케인의 움직임을 바꾸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었죠.
실패일까, 아니면 배움의 역사일까?
하지만 스톰퓨리 프로젝트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1947년 프로젝트 시러스(Project Cirrus)에서 최초로 허리케인을 수정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 오히려 허리케인의 진로를 예측불허로 바꿔 사바나(조지아)를 강타하면서, 인위적 개입이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대중의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 결과 이후 실험들은 제한적인 지역에서만 가능했고, 수년간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 대기 상태로 지나간 시즌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점차 드러난 과학적 의문점들—예컨대, 허리케인이 사실상 이미 자발적으로 여러 개의 아이월을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 허리케인 내부에 씨앗 물질에 반응할 정도로 많은 과냉각수가 없다는 점—은 프로젝트의 과학적 기반을 흔들었습니다.
결국 1971년, 허리케인 진저(Ginger)를 대상으로 한 마지막 실험도 뚜렷한 결과 없이 종료되었고, 미 해군은 같은 해 지원을 철회합니다. 동시에, 베트남전에서 기상 조작 기술이 은밀히 사용되고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스톰퓨리는 더욱 논란의 중심이 되었죠. 이후 1983년, 공식적으로 프로그램은 종료됩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남긴 건 실패뿐이 아니었습니다. 수천 회의 항공 관측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는 허리케인의 경로와 강도 예측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였고, 그 덕분에 현대 기상모델은 24시간 내 예측 오차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대의 특별 개조된 P-3 항공기—애칭 ‘커밋(Kermit)’과 ‘미스 피기(Miss Piggy)’—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허리케인 관측 임무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허리케인을 멈추는 꿈은 계속될까?
스톰퓨리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능성’과 ‘한계’ 사이를 오갔던 과학적 실험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망과 좌절, 논란이 있었지만, 동시에 우리는 허리케인을 이해하고 대비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 데이터를 얻었고, 그 유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허리케인을 통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매혹적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스톰퓨리에서 배웠습니다. 인간이 바람을 멈추고, 태풍을 돌리는 날이 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관측하고, 예측하며, 대비하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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