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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우주 지구

일본 ‘리질리언스’ 탐사선이 선택한 느린 비행의 의미

by 난티의 세상 탐방 2025. 6. 8.

우주 탐사는 늘 시간과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느린 길’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일본 민간 우주기업 아이스페이스(Ispace)가 개발한 무인 달 착륙선 ‘리질리언스(Resilience)’는 올해 6월, 수개월에 걸친 긴 비행 끝에 달 착륙에 도전합니다. 그 사이, 함께 발사된 다른 탐사선은 이미 달에 도달해 착륙을 마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space는 서두르지 않는 선택이 가져다주는 배움에 주목합니다.

느린 여정, 깊은 학습: Ispace의 ‘로우 에너지 전이 궤도’ 전략

리질리언스는 작년 1월, 스페이스 X의 로켓에 실려 플로리다에서 출발했습니다. 함께 발사된 텍사스 기반의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Firefly Aerospace)의 블루 고스트(Blue Ghost)는 몇 주 만에 달에 도달하고, 3월에 성공적으로 착륙했습니다. 반면 리질리언스는 무려 5개월에 걸친 여정을 택했습니다. 이처럼 천천히 달로 접근하는 경로는 ‘로우 에너지 전이 궤도(low-energy transfer trajectory)’라고 불립니다. 마치 내리막길을 자전거로 천천히 굴러가는 것처럼, 연료를 적게 쓰고 중력의 도움을 받아 항해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분명합니다. 긴 비행시간 동안 탐사선의 센서,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등의 다양한 시스템을 반복적으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겪으며 대응하는 경험은 향후 우주 비행의 품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Ispace의 CFO인 노자키 준페이는 “이 여정 자체가 학습 과정”이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도쿄에 위치한 미션 컨트롤 센터에서는 3개 팀이 교대로 임무를 감시하며 수개월 간의 심우주 비행을 모니터링해 왔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민간 기업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훈련의 기회였습니다.

실패의 교훈, 그리고 두 번째 도전

사실 Ispace의 달 착륙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23년 4월, Ispace는 첫 번째 탐사선을 아틀라스 크레이터(Atlas Crater) 근처에 착륙시키려 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충돌로 인해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당시에도 로우 에너지 궤도를 사용했으며, 지구를 떠난 지 약 4개월 반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번에 리질리언스가 노리는 착륙지는 ‘해의 바다(Mare Frigoris)’라는 지형입니다. 달의 북쪽에 위치한 약 1,200km 길이의 평원으로, 첫 착륙지였던 아틀라스 크레이터보다 훨씬 평탄합니다. 보다 완만한 지형 덕분에 착륙이 더 수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Ispace는 이를 “유연한 착륙 지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도전을 통해 Ispace는 다시 한번 민간 우주기업으로서의 역량을 입증하고자 합니다. 성공한다면, 미국 외 국가에서 최초로 민간 기업이 로봇 착륙선을 직립 상태로 달에 착륙시킨 사례가 됩니다. 이는 이미 블루 고스트를 통해 성공한 파이어플라이에 이어 두 번째 기록이기도 합니다.

달에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지금까지 민간 탐사선들은 대부분 빠른 경로를 선택해 왔습니다. 파이어플라이의 블루 고스트나, 인튜이티브 머신즈(Intuitive Machines)의 노바-C(Nova-C) 착륙선은 강력한 엔진을 이용해 약 일주일 만에 달까지 도달했습니다. 반면 리질리언스는 무게가 가볍고 추진력도 상대적으로 약한 만큼, 에너지를 아끼며 장거리 항해를 택한 셈입니다.

하지만 Ispace는 이번 미션을 마지막으로 로우 에너지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고객사의 요구 때문입니다. 리질리언스를 통해 운반 중인 화물에는 조류 기반 식량 생산 시스템, 우주 방사선 모니터, 수분 전기분해 장치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 장비들은 달에 도착한 후 실험을 수행할 예정이지만, 긴 우주 비행은 극심한 온도 변화와 방사선 노출로 인해 민감한 장비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Ispace는 다음 미션인 ‘에이펙스 1.0(Apex 1.0)’에서는 보다 빠른 경로를 택할 계획입니다. 해당 미션은 NASA의 CLPS(Commercial Lunar Payload Services) 프로그램 하에 미국 드레이퍼(Draper)사와 협력하여 진행되며,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준비 중입니다.


달 탐사 관련 이미지

달 탐사의 시대, 민간의 도전은 계속된다

이제는 국가 우주기관뿐 아니라 민간 기업들도 달을 향한 도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CLPS 프로그램을 통해 NASA는 다양한 기업들과 협력하여 과학 장비를 운반하고, 향후 유인 탐사에 앞서 로봇 착륙선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리질리언스가 성공적으로 착륙에 성공한다면, 이는 일본 민간 우주 기업의 커다란 도약이자 국제 협력의 사례가 될 것입니다.

우주로 향하는 길은 더 이상 하나뿐인 선택이 아닙니다. 빠르게 가느냐, 천천히 배우며 가느냐는 각 기업의 전략에 따라 달라집니다. 리질리언스의 도전은 바로 그 다양한 길 중 하나였고, 우리는 그 도전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곧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함께 그 긴장감 넘치는 착륙 순간을 기대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