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는 태양계를 하나의 완성된 모범답안처럼 생각했습니다. 태양 가까이엔 작고 단단한 암석 행성들, 멀리에는 가스와 얼음으로 된 거대한 행성들이 일정한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었죠. 수금지화목토천해—각각의 특징도 뚜렷하고 질서도 명확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태양계 밖의 외계 행성들이 발견되면서 우리의 상식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됩니다. 1995년, 태양과 유사한 별을 도는 첫 외계 행성이 발견되었을 때, 그것은 목성처럼 크고 가스덩어리인데도, 별에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 ‘뜨거운 목성(hot Jupiter)’이었습니다. 이는 태양계의 어느 행성과도 닮지 않았죠. 그리고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외계 행성들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상상 너머의 행성들
지금까지 발견된 수천 개의 외계 행성 중에는 믿기 어려운 세계가 많습니다. 어떤 행성은 대부분이 물로 이루어졌고, 또 어떤 행성은 쌍성(두 개의 별)을 중심으로 공전합니다. 심지어 어떤 행성은 모항성의 자전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어떤 ‘뜨거운 목성’들은 단 4일 만에 별을 한 바퀴 돌기도 하죠. 다중 행성계에서는 다섯 개나 되는 행성들이 지구와 금성 사이 공간에 전부 들어갈 정도로 밀집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행성은 기존의 행성 형성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영국 엑서터 대학의 외계 행성 과학자 데이비드 싱 박사는 “이들 행성의 밀도를 보면, 스티로폼부터 납까지 무엇으로든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합니다.
우주의 다채로움은 생물학자 J.B.S. 홀데인의 말처럼 “우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이상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태양계가 생각보다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행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금까지 주로 받아들여졌던 행성 형성 이론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핵응축(core accretion)’ 모델입니다. 젊은 별 주위에 형성된 가스와 먼지 원반에서 작은 입자들이 충돌하고 응집되며 암석 행성이 만들어지고,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얼음이 응고되어 더욱 빠르게 성장하며 가스 행성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입니다.
두 번째는 ‘중력 붕괴(gravitational collapse)’ 모델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가스 원반이 중력에 의해 스스로 붕괴되어 대형 가스 행성이 한 번에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 모델은 원래 큰 가스 행성만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졌지만, 항성에서 나오는 강한 방사선이 가스층을 날려버릴 경우, 남은 암석 핵이 작은 행성으로 남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워릭 대학의 피트 휘틀리 박사는 “대부분의 경우 핵응축 이론이 지배적이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 대형 행성이 여러 개 있는 경우에는 중력 붕괴 이론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최근에는 ‘행성 이주(Migration)’ 이론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는 목성, 천왕성, 해왕성이 원래는 더 멀리서 형성되었다가 현재 위치로 이동해 왔다는 가설입니다. 초기 태양계의 혼란기 동안, 행성들이 불안정한 궤도를 거쳐 점차 안정된 자리를 찾았다는 설명도 이와 유사하죠.
또 하나의 가능성은, 어떤 가스 행성이 별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서 그 상층 대기가 별의 X선에 의해 날아가고, 남은 암석 코어가 지구형 행성으로 남는 시나리오입니다. 휘틀리 박사는 “이런 현상이 실제로 관측된 행성도 몇 개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마치 극단적인 오로라처럼, 별과 행성 간의 에너지 상호작용이 행성 진화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지구의 쌍둥이를 찾아서
외계 행성을 연구하는 가장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 ‘지구형 행성(Earth twin)’을 찾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형이라는 표현 자체가 편견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지구와 유사한 조건이어야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외계 행성 중 약 25%는 '슈퍼지구(super-Earth)'로 분류됩니다. 지구보다 훨씬 크지만 가스 행성보다는 작은 이 행성들은 반드시 지구와 비슷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외계 행성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대부분은 제한된 관측 자료를 기반으로 추정하는 수준입니다.
2009년부터 임무를 수행한 NASA의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이제 퇴역했지만, 여전히 분석되지 않은 방대한 데이터를 남겼습니다. 직접 이미징(direct imaging)을 통한 외계 행성 관측은 이제 막 가능해지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앞으로는 수백 개의 외계 행성 대기 성분과 밀도를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가동될 예정입니다. NASA는 칠레에 설치될 ‘제미니 직접 이미저’와 ‘트랜지팅 외계 행성 탐사 위성(TESS)’을 계획 중이며, 영국도 밝은 별 주변에서 해왕성 크기 이하의 행성을 찾기 위한 ‘넥스트 제너레이션 트랜싯 서베이’를 준비 중입니다.
NASA 에임스의 마크 말리 박사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진정한 의미의 ‘지구 쌍둥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끝없이 확장되는 우주의 이야기
행성은 별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예상 밖의 변수가 많습니다. 지구는 생성 초기에 다른 천체와 충돌해 달을 갖게 되었고, 비슷한 크기의 금성은 두꺼운 독성 대기로 인해 온실효과가 극심합니다. 토성의 아름다운 고리는 사실 과거의 위성이었던 것으로 보기도 하죠.
각 행성은 모두 저마다의 독특한 형성과정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세부 사항이 전체 이론을 바꾸기도 합니다. 현재까지는 ‘슈퍼지구’가 가장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NASA의 찰스 베이참 박사는 “우주에는 작은 암석 행성이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며 앞으로는 이들이 주류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지금까지 외계 행성 탐사는 하늘의 0.25%도 채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은 곧, 앞으로 우리가 발견할 행성과 우주 이야기의 대부분이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프린스턴 대학교의 애덤 버로스 박사는 “지구를 이해하려면, 지구와 비슷한 다른 행성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기원과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여정은 결국, 우주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행성 하나하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자신에 대한 가장 깊은 성찰로 이어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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