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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우주 지구

우주의 이상 폭발: ‘카우 플레어’의 정체는?

by 난티의 세상 탐방 2025. 5. 25.

2018년, 지구에서 2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전례 없는 강력한 우주 폭발이 관측됐습니다. 전 세계 천문학자들이 깜짝 놀랄 만큼 강렬한 빛을 방출한 이 폭발은, 너무도 짧고도 강렬하게 빛났다 사라졌죠. 'AT2018 cow'라는 공식 이름을 받은 이 현상은, 이후 많은 이들이 기억하기 쉽게 ‘카우(Cow)’라는 별명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폭발은 기존의 초신성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일반적인 별의 폭발이라면 수 주에서 수개월 동안 점차 밝아지고 사라지지만, 카우는 단 며칠 만에 나타났다 사라졌고, 그 밝기는 일반 초신성의 최대 100배에 달했습니다.

 

‘LFBot’이라는 새로운 우주 폭발 클래스의 등장

과학자들은 이후 비슷한 폭발들을 추가로 관측하며, 이 희귀한 사건들을 'LFBot(Luminous Fast Blue Optical Transients)'이라 분류했습니다. Cornell대의 천문학자 안나 호(Anna Ho)에 따르면, LFBot은 이름 그대로 '밝고, 빠르며, 푸른빛을 띠는' 단파장 가시광선 폭발입니다. 약 4만 도 이상의 고온에서 방출되는 푸른빛은 이 폭발이 엄청난 에너지를 동반함을 나타냅니다.

이들은 대부분 불과 몇 일 만에 밝아졌다가 사라지며, 현재까지 약 10여 건이 공식적으로 보고되었습니다. 특징적으로 이들은 '소(Cow)', '코알라(Koala)', '낙타(Camel)', '태즈메이니아 데블(Tasmanian devil)', '핀치(Finch)' 등 동물 이름으로 별명이 붙곤 합니다.

 

과연 무엇이 이런 폭발을 일으키는가?

초기 이론 중 하나는 '실패한 초신성' 가설이었습니다. 별이 폭발을 시도했지만 실패해 중심부가 블랙홀로 붕괴되고, 그 블랙홀이 별의 내부에서 물질을 빨아들이며 잠시 폭발 현상을 만들어냈다는 설명이죠.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가설보다 더 유력한 이론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바로 ‘중간 질량 블랙홀(Intermediate Mass Black Hole)’이 원인이라는 주장입니다.

Liverpool John Moores University의 다니엘 퍼리(Daniel Perley) 교수는 "천문학계의 전반적인 시선이 중간 질량 블랙홀 가설로 옮겨가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 블랙홀은 질량이 태양의 100배에서 10만 배 정도로, 소형 블랙홀과 은하 중심의 초대질량 블랙홀 사이에 해당하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이들이 주변에 있는 별을 빨아들일 때, 짧고 강력한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 이상 폭발 관련 사진

 

'와스프'의 발견: 카우 이후 최고의 후보

2024년 11월, 안나 호와 다니엘 퍼리는 새로운 LFBot인 AT2024wpp를 발견했고, 이를 ‘와스프(Wasp)’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폭발은 카우 이후 가장 밝았으며, 그 초기 단계부터 포착되어 허블 우주망원경을 비롯한 여러 관측 장비들이 정밀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와스프의 초기 관측 결과는, 이것이 실패한 초신성보다는 블랙홀에 의한 별의 파괴와 더 유사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퍼리 교수는 "보통 실패한 초신성이라면 방출되는 잔해 물질이 감지되어야 하는데, 와스프에선 그런 흔적이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예비 분석 결과이며, 더 많은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카우는 중간 질량 블랙홀의 흔적일까?

2024년 9월, 네덜란드 우주연구소의 정 차오(Zheng Cao) 박사와 연구팀은 카우 폭발의 X선 데이터를 다시 분석해, 그 주변에 원반 형태의 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컴퓨터 모델링 결과, 이 원반은 중간 질량 블랙홀이 별을 잡아먹으면서 형성된 잔해로 보였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기존의 LFBot들이 단순한 별의 실패한 폭발이 아닌, 중간 질량 블랙홀의 활동이라는 이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LFBot은 우리가 아직 직접 관측하지 못한 중간 질량 블랙홀의 존재를 입증하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LFBot은 우주의 블랙홀 계층을 잇는 연결고리?

현재까지 우리는 태양 질량의 몇 배에 불과한 소형 블랙홀과 수백만~수십억 배에 달하는 초대질량 블랙홀만 관측해왔습니다. 그 사이의 중간 질량 블랙홀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해 왔고, LFBot은 이 존재를 추적할 수 있는 희귀한 단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퍼리 교수는 "중간 질량 블랙홀은 정말 흥미롭고도 중요한 주제이며, 이 존재가 확실히 입증된 적은 아직 없다"고 말합니다. 더 많은 LFBot 사례가 수집되어야 확실한 결론에 다다를 수 있으며, 이상적으로는 약 100건 정도의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새로운 망원경, 새로운 기회

다행히도 곧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2025년에는 이스라엘이 개발한 ‘울트라샛(Ultrasat)’이라는 자외선 우주 망원경이 궤도에 진입할 예정이며, 1,000개의 보름달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넓은 관측 시야 덕분에 수많은 LFBot을 찾아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 역시 LFBot 하나하나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관측 시간 배정이 어려워 지금까지는 시도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안나 호 박사는 "JWST로 두 번 제안했지만 아직 승인이 나지 않았다"며 "다시 도전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이론은? 울프-레이에 별의 가능성

LFBot의 원인으로 제시된 또 다른 이론은, 매우 거대한 울프-레이에(Wolf-Rayet) 별이 질량이 작은 블랙홀(태양 질량의 10~100배)에 의해 찢기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콜럼비아 대학교의 이론 천체물리학자 브라이언 메츠거는, 이 과정이 중력파를 통해 관측되는 블랙홀 쌍의 생성과 유사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우주의 ‘폭발’은 단순한 불꽃놀이가 아니라, 블랙홀, 별, 그리고 우주의 구조에 대한 깊은 단서를 담고 있습니다. 희귀하고 신비로운 LFBot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 실험실이며,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와 관측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우주의 비밀을 밝혀줄 열쇠가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