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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우주 지구

우리의 우주 역사를 구하고자 하는 '우주 고고학자들'

by 난티의 세상 탐방 2025. 5. 25.

우주 역사 고고학자 관련 사진

 

인류의 흔적, 우주에서 사라지고 있다

우주 탐사는 이제 정부 기관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민간 기업들이 앞다투어 달과 우주로 향하는 시대에, 인류가 남긴 역사적 유산은 점점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단 몇십 년 전만 해도 막 시작한 여정이었지만, 지금은 상업적 이해관계가 앞서는 현실 속에서, 우주에 남은 인류의 첫걸음들이 무시되고 훼손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연구자들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우주 고고학자(space archaeologists)'들입니다. 이들은 우주 탐사의 역사적 유물과 장소를 보존하고, 인류의 우주 문화유산을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고대 유적지인 스톤헨지처럼, 달에 남겨진 아폴로 11호의 착륙 지점 역시 인류 문명의 중요한 유산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고고학이 우주로 간다: ISS에서의 첫 발굴

2022년 1월 14일, NASA 우주비행사 케일라 배런은 인류 최초로 지구 바깥에서 고고학적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녀는 국제우주정거장(ISS) 내부의 다양한 장소에 1㎡ 크기의 영역을 표시하고, 60일 동안 그 공간의 변화를 관찰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는 ‘우주 고고학’의 실질적인 첫 현장 연구로 평가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앨리스 고먼(Flinders University)과 저스틴 월시(Chapman University)가 공동으로 진행한 것으로, 고고학적 시각에서 우주 속 인간의 활동과 문화적 흔적을 분석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들은 해당 연구를 통해 우주비행사들이 공간을 어떻게 개인화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응해 가는지를 밝혀냈습니다. 예를 들어, 우주정거장 벽면에 종교 아이콘이나 가족사진, 우주 영웅의 상징 등을 붙이며 인간적인 공간을 만드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달 유산의 보존: 트랭퀼리티 베이스와 아폴로 11호의 흔적

우주 고고학의 시작을 알린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뉴멕시코 주립대학의 베스 오리어리 교수의 '달 유산 프로젝트(Lunar Legacy Project)'입니다. 2000년 이 프로젝트는 인류가 달에 남긴 모든 유물을 고고학적 시각으로 기록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트랭퀼리티 베이스(아폴로 11호 착륙지)를 포함해 현재까지 약 106개의 유물이 확인되었으며, 이 중에는 채취용 삽, 발자국, 아폴로 1호의 추모 배지, 심지어는 옛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과 블라디미르 코마로프의 훈장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유물들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닙니다. 국가 간 경쟁과 화합, 인간의 도전과 희생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단순히 기술의 발자취를 넘어 인류 문명의 중요한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위협받는 우주유산: ISS와 허블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우주 유산 중에서도 특히 국제우주정거장(ISS)과 허블 우주망원경의 운명은 불확실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NASA보다 더 빠르게 ISS를 궤도 이탈시켜 해체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인류 최대 규모의 우주 구조물이자 문화유산이 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저스틴 월시는 이에 대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우주선은 미리부터 보존 계획을 포함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ISS의 약 40%는 재진입 시에도 생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지구로 가져와 전시하거나, 특정 안정 궤도에서 '우주 박물관'처럼 보존하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우주 유산 보존의 희망과 실제 사례

다행히도 몇몇 희망적인 움직임이 있습니다. 2025년, 세계기념물기금(World Monuments Fund)은 25개의 위협받는 유산 목록에 달을 포함시키며, 아폴로 11호 착륙지를 보호해야 할 유산으로 인정했습니다. 이는 우주도 지구 유산처럼 보존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또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2023년 ‘우주유산 전문위원회(ISCoAH)’를 출범시키며 달 표면 유산 보존의 필요성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는 고고학계와 문화재 보존계 모두에게 큰 의미를 가진 이정표입니다.

케이프 커내버럴에서의 현장 보존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은 유인우주비행의 요람입니다. 이곳에서 활동 중인 고고학자 토마스 팬더스는 미 공군과 우주군의 문화재 보존 책임자로서, 블루오리진 같은 민간기업과 협력하여 역사적 시설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는 발사 단지 주변에서 미사일 부품이나 구시대 로켓 부품들을 직접 발굴하며, 1950~60년대 우주 개발 경쟁 시기의 유물을 조사하고 기록합니다. 팬더스는 “이곳은 미국 우주 프로그램의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성지와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우주 고고학의 미래: 상업화 속에서 지켜야 할 가치

우주 고고학은 더 이상 ‘이론적 상상’이 아닙니다. 실제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민간기업들도 이들의 연구를 참고하여 미래 우주정거장 내부 설계를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과거에 비해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많은 자료들이 축적되고 분석 가능해졌으며, 이는 우주 공간 속 인간 활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앨리스 고먼 교수는 “우주는 너무 최근의 일이라 고고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거는 1밀리초 전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라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우주 활동은 인류 문명의 일부이며, 그만큼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산이라는 뜻입니다.

 

우주 역사 고고학자 관련 사진


이 글은 우주 고고학이라는 독특하고 새로운 분야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우주 유산을 보존하려 하는지를 소개합니다. 상업화가 가속화되는 이 시점에서, 인간의 흔적을 지키려는 시도는 더없이 소중한 작업이며,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아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