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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우주 지구

시에라 네바다 지하에서 벌어지는 일

by 난티의 세상 탐방 2025. 6. 3.

우리는 보통 지진이 지표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다고 알고 있죠. 하지만 최근 한 지진학자가 캘리포니아의 지진 기록을 들여다보다가 아주 이례적인 데이터를 발견했습니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 아래, 일반적인 지진 발생 깊이보다 훨씬 아래에서 계속해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던 건데요. 이 발견은 지구 내부에서 진행 중인 ‘지각의 벗겨짐’, 즉 리소스피어 침강(lithospheric foundering)이라는 흥미로운 과정을 밝혀냈습니다.

1. 너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지진, 그 이유는?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의 데보라 킬브 박사는 지난 수십 년간의 지진 기록을 분석하다가, 눈에 띄는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보통 북캘리포니아에서는 지진이 지표에서 10km 깊이, 남쪽에서는 약 18km까지 일어납니다. 그런데 시에라 네바다 산맥 중앙에서는 그보다 두 배나 깊은 20~40km 지하에서 지진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죠.

“이 정도 깊이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에요. 보통은 지각의 온도와 압력 때문에 그 아래에서는 지진이 일어나기 어렵거든요.” 킬브 박사의 말입니다. 이 이상한 패턴을 다른 연구자에게 공유했는데, 흥미롭게도 이미 해당 지역의 특이한 암석 구조를 연구 중이던 콜로라도대학교의 베라 슐테-펠쿰 교수와 연결되면서 이야기의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어요.

둘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리시버 함수 분석’이라는 지진파 기반 지하 이미지 기술을 이용해 시에라 네바다 지하를 들여다봤습니다. 그 결과, 중앙부에서 실제로 지각이 맨틀 쪽으로 ‘벗겨지고’ 있는 현상이 관측된 겁니다. 마치 껍질이 벗겨지듯, 지구의 겉층 일부가 내부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던 거죠.

2. 대륙이 솟아오른 비밀, 밀도의 균형에서 시작된다

지구의 표면을 구성하는 ‘리소스피어’는 단단한 지각과 상부 맨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층은 다시 해양지각(얇고 무거움)과 대륙지각(두껍고 가벼움)으로 나뉘죠. 슐테-펠쿰 교수는 “대륙이 지금처럼 해수면 위에 떠 있으려면, 안쪽에서 밀도 높은 물질이 제거되어야 해요”라고 설명합니다.

이번 관측에서는 지하 약 40~70km 깊이의 암석층에 뚜렷한 ‘변형 흔적’이 확인되었습니다. 마치 점이 찍힌 찰흙 덩어리를 손으로 눌렀을 때 점들이 줄무늬처럼 변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죠. 남부 시에라에서는 이 줄무늬가 선명하고, 그 부분은 이미 맨틀 속으로 분리되어 가라앉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중앙부는 지금 그 과정이 한창 진행 중이고, 북부에서는 아직 뚜렷한 변형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해요.

이 구조적 변화는 곧 지진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중앙 시에라 지역의 지각이 비정상적으로 두껍고 차갑기 때문에, 일반적인 깊이보다 훨씬 아래에서도 지진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죠. “암석은 열을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데 아주 긴 시간이 걸려요. 아래로 당겨진 지각은 여전히 차가운 상태인 거죠.”

 

네바다 산맥 관련 이미지

3.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구는 지금도 변하고 있다

이런 ‘지각의 벗겨짐’은 지표에서는 보이지 않고, 변화 속도도 매우 느려서 쉽게 포착되지 않습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남부 시에라 지역은 약 300만~400만 년 전에 이 과정을 마무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북쪽으로 그 변화가 확장되고 있다고 해요.

사실 이처럼 리소스피어가 내부로 가라앉는 현상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났거나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남미의 안데스산맥이 있어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무거운 물질은 내부로 가라앉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물질이 위로 떠올라 현재의 대륙 지형이 만들어진 것이죠.

콜로라도대 슐테-펠쿰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대륙 위에서 살아가는 것도, 사실 이런 지질학적 변화 덕분이에요. 지구가 대륙을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다른 생명체로 진화했을 수도 있죠.” 단순히 학문적 흥미를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자체가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꽤 큰 의미를 가집니다.

4. 논쟁의 현장 속에서 길어 올린 새로운 가능성

사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은 지질학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논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산맥 아래의 맨틀에서 발견된 이상한 구조 때문인데요. 일부는 이를 리소스피어 침강으로 보고, 다른 일부는 해양판이 대륙판 아래로 섭입 되면서 생긴 결과라고 주장해 왔죠.

조지아공대의 미첼 맥밀런 박사는 “이 연구는 그 논쟁에 매우 흥미로운 데이터를 더해주는 사례”라고 말합니다. 그는 또 “이런 발견이 지구의 장기적인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죠.

아직 이 변화가 지형에 어떤 영향을 줄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명확하지 않아요. 몇십만 년이 걸릴 수도 있고, 수백만 년이 걸릴 수도 있죠. 다만 하나는 확실합니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아래에서도 지구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고, 그 움직임이 바로 우리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준 힘이라는 것.


다음 산책길에 시에라 네바다나 안데스를 떠올려보세요. 우리가 서 있는 이 땅 밑에서도 지구는 아주 조용하지만 강력한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꽤 멋지지 않은가요?